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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출판사 Scuba Diver 1989년 9/10월호에서
 

다이빙 인구가 증가하면서 잠수 잠비의 수입은 증대되고 있으나 장비의 애프터서비스 문제는 그것에 비례하여 나아지고 있지는 않
다. 특히 에어 콤프레서의 경우에 있어선 수선 전문가나 부품이 흔치 않아 곤욕을 당하는 예가 많다. 또한 수선 전문가가 있다손 치더
라도 수선 의뢰의 건 수가 그 전문가의 수입에 영향을 줄만큼 많지도 않기 때문에 이 분야에 적극적인 자세로 영업을 하려는 전문인
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에어 콤프레서의 고장 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는 사람은 콤프레서를 소유한 소수의 다이빙 샵과 개인 다이버들이며 이들로부터 애프
터서비스 문제의 추궁을 당하는 몇몇 수입업자들이다.
수입업자는 흔하게 일감이 나타나지도 않는 콤프레서 수선 때문에 월급을 주고 전문인을 고용하고 있을 수도 없다.
그리하여 에어 콤프레서의 고장을 당한 다이버는 이곳 저곳에 문의하여 에어 콤프레서 전문업소가 아닌, 다른 유사 기계들을 만져주
는 공작소를 찾게 된다. 다이빙계에도 콤프레서를 잘 만진다는 재주꾼이 이따금 있기는 있으나 이들의 완전한 지식은 의문스러울 때
가 많다. 필자가 알기로는 기계 전문가들에게 있어 에어 콤프레서는 어려운 기계가 아닌 것으로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특정  에어 콤
프레서의 구조적 특징을 알고 있지 않으면 수선을 했다고 해도 그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왠만한 전문가라면 콤프레서가 당장은 돌
아가게 해 줄 수 있지만 콤프레서의 진짜 하이테크 비밀을 알지 못하면 10년 쓸 기계를 1~2년의 수명으로 단축시켜 놓을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것이 한국 잠수계가 안고 있는 에어 콤프레서에 관한 문제점들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콤프레서의 애프터서비스 애로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인천의 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서 내
연기관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 저압 콤프레서 공장에서 일했으며 군대에서는 차량의 엔진을 돌보았다는 기능공 장인환씨가 그 기대
를 걸게 하는 사람이다.
필자가 지난 7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마레스 컨벤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떠났을 때 동행중에 장인환씨가 있었다. 그는 이탈
리아의 콤프레서 제조회사인 콜트리(Coltri)로 콤프레서 수선법을 배우러 가는 길이었다. 나는 처음에 장인환씨가 수입업자나 콜트리
의 경비지원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된 줄로 알았다. 그러나 알고보니 여행경비는 자비 부담이었고 수입업체인 코다스포츠로부
터 콜트리를 알선 받은 것이었다.
부유해 보이지도 않는 장인환씨가 큰 경비를 손수 부담해 가며 당장은 좋은 수입도 올릴 수 없는(?) 에어 콤프레서 유학을 간다는 것
이 필자로 하여금 의아한 생각을 갖게 했던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장인환씨가 다이빙계에 흔히 있는 소위 [다이빙 또라이]란 것을 알고나서 나는 '그래서 그렇구먼...'하고 수긍할 수 있었다.
인천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부터 물과는 친숙한 관계였다. 그런 유년시절을 갖고 있는 그가 성년이 되어 스쿠바 다이버가 되었다면
이상할 것도 없겠다.
그는 서울의 빅다이버스 클럽이 회원의 확장을 위해 맹렬히 활동했던 1984년 봄에 이 클럽의 회장이었던 조광윤씨로부터 다이빙 교
육을 받고 빅다이버스 클럽의 회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장인환씨는 자동적으로 에어 콤프레서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가
수선한 국내 에어 콤프레서는 60대가 넘었다. 현재 거주지가 안양인 그는 안양에 사는 20여명의 스쿠바 다이버들을 규합하여 클럽
활동을 펼쳤고 틈틈이 다이빙 가이드의 일과 강사의 일을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다이빙 취미에 미쳐있기 때문에 자신의 장기인 다이빙 기계(에어 콤프레서)에도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시에 도착했을 때 장인환씨는 이탈리아 말로 길을 묻고 물건의 값을 물었다. 그는 마치 이탈리아에 여러 번 여행했
던 사람같이 행동했다. 나는 깜짝놀라 그에게 연유를 물었다. "어렵게 돈 마련해서 이탈리아에 기술 배우러 가는데 말을 못 알아 들으
면 헛탕 아닙니까? 저는 두달 전부터 이태리말 책을 사서 밤새도록 읽고 또 읽었지요!" 나는 장인환씨에게 탄복하고 "그건 참 좋은 태
도요!"라고 말했다.
4일에 걸친 [마레스 컨벤션]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코다스포츠의 유영재사장과 함께 밀라노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콜트리
회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필자가 예측한 대로 장인환씨는 콜트리의 기능공들과 농담을 할 정도로 친해져 있었고 콜트리의 사장은 장인환씨를 가르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장인환씨는 그곳에서 10대의 콤프레서를 조립했고 수선품으로 들어온 콤프레서를 6대나 자신이 고쳤다고 했다. 장인환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많은 콤프레서를 만져보았지만 몰랐던 중요한 사실들을 여러 가지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여기 사람들이 어찌나 친절하게 구는지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이탈리아 기능공들은 떠나는 장인환씨에게 이것 저것 알 수 없는 쇠붙이들을 계속 갖다 주고 있었다. 그것들은 콤프레서 부품들이었다. 장인환씨가 웃으며 한국말로 말했다. "야 임마, 나야 좋지만 너희 사장이 보면 어쩔려고 그러냐? 이게 한국에서 얼마짜리인지 알기나 하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콜트리 기능공들도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싱긋이 웃으며 또 한보따리의 부품을 챙겨 주었다.








장인환씨는 한국에 사무실이나 공작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안양의 모회사에서 역시 기능공으로 일하고 있으며 자유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직책에 있다.
콤프레서 수리는 출장수리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콤프레서는 무게가 크기 때문에 기계 자체를 들고 다녀서는 안된다고 한다. 출장을 나간다 해도 챙겨야 할 부품과 공구의 부피는 간단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는 바우어, 포세이돈, 에어러써브, 콜트리등 4가지 상표의 콤프레서가 들어와 있는데 이것들 모두의 구조가 거의 동일해서 어떤 콤프레서이든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이 장인환씨이다.
다이빙계에는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다이빙계는 발전해 왔던 것이다. 장인환씨도 바로 그런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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